39조2항 전시 블로그 39(2)

군사문화와 문화의 군사

Posted in 군사문화와 문화의 군사 by kay209 on April 6, 2009

자유분방한 지식인이라면 군사문화가 좋을 리 없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온갖 음악들을 섭렵하였고, 운전하면서 슈톡하우젠이나 루이지 노노의 전위음악을 즐겨 듣는 내가 심심할 때면 ‘남아의 끓는 피 조국에 바쳐’ 하는 군가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린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심지어는 중학교 때 <배달의 기수>에서 본 ‘우리는 전진하는 유신의 국군’이라는 구절마저도 흥얼거려지니, 군사문화는 내 머리 속에 단단히 틀어 앉아 있나 보다. 군대 시절 중대장 책상에 놓여있는 군가카세트테이프에 ‘군가붐조성’이라는 문구를 보고 참 촌스런 발상이라고 생각했던 나인데 말이다. 80년대의 군인과 공무원들이 꽃을 심어 화단을 조성하듯이 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발상이 우스워서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마도 군사문화는 우리가 내쫓으려 한 그 타자 자체가 아닌가 싶다. 군사문화란 이미 잠재적으로 전쟁기계였던 우리들을 국가가 징집하면서 부여한 어떤 타이틀 같은 게 아닌가 싶다. ‘너희들은 더 이상 광야를 질주하는 전쟁기계가 아니다. 너희들은 국가가 질주하라고 할 때만 질주 할 수 있고, 멈추라고 할 때만 멈출 수 있다라고 국가는 말 하는 듯하다. 아니다. 말하는 듯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아주 자세하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그 말이 어찌나 자세한지 제대하고 학교에 돌아온 예비역 병장이 ‘했씁니다, 하셨씁니까’하는 말투를 오래도록 못 버릴 정도이니 말이다. 군사문화는 전쟁에 대한 것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전쟁과는 상관 없는 규율에 대한 것이다. 즉 규율의 제스처를 삶의 문화로 바꿔 놓은 것이 군사문화이다.

흔히 군사문화라면 사람들은 획일성을 생각하지만 군사문화란 수 없이 복잡하고 성가신 프로토콜을 의미한다. 아마 짐작하건데, 군대 가서 가장 짜증 나는 사람들 중 하나가 평소에 게임을 많이 즐기던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게임에서는 바로 총을 쏠 수 있지만, 실제 군대 가면 총 하나 쏠 때까지 멀고 먼 프로토콜들이 기다리고 있다. 보충대에 입소해서 며칠 보내는 것은 생략한다고 해도, 총을 나눠 준다고 바로 쏘러 나가는 것이 아니다. 총을 주고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올바로 총 잡기, 총 들고 서 있기, 총 들고 걷기, 총 들고 경례하기, 총 들고 기합 받기와, 총검술, 제식동작, 분열 등 총에서 파생된 온갖 응용동작들이니, 총을 쏜다는 것은 차라리 그런 절차들의 한끄트머리 정도로 생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절차들을 다 거치고 나서야 소총의 원리와 작동방식, 분해조립순서에 대해 배우게 되며, 이른바 피가 나고 알이 박이고 이가 갈린다는 PRI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제서야 사선에 올라갈 수 있는데, 여기서도 한참을 교육을 받고 얼차려를 받아야 총을 쏠 수 있으며, 영화에서 보듯이 마음 놓고 드르륵 갈기는 것이 아니라 쏘라고 할 때 한 발씩 밖에 쏠 수 없다. 그리고 사격성적이 나쁘면 또 가혹한 얼차려가 기다린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풀 메탈 자켓>에서 해병대 신병들이 빤쓰 바람으로 침상에 누워 무거운 M14 소총을 가슴 위로 손 한 뼘 높이로 들고 “This is my rifle. There are many like it, but this one is MINE. My rifle is my best friend. It is my life. I must master it as I must master my life. My rifle without me is useless. Without my rifle, I am useless….” 하는 미해병대 소총강령을 외우는 장면은 총을 쏘기 위해 필요한 프로토콜의 극히 일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프로토콜은 대단히 절도 있고 단호하다

군대는 게임에서 하듯이 총을 바로 집어들고 내 마음대로 아무데나 갈기며 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선, 군대에서는내 마음대로라는 것이 없으며, 총은 나를 초월해 있는 무수한 프로토콜의 덩어리며, 군대는 더 크고 많은 프로토콜의 종합대학인 것이다. 기본화기인 소총 쏘는 데만 해도 그렇게 많은 프로토콜의 고비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더 복잡한 포를 쏜다던가 탱크를 몬다던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린다던가 하는 것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프로토콜들의 단과대학인 것이다. 그런 프로토콜들은 알게 모르게 민간일상의 프로토콜과 닮아 있거나 겹쳐 있다. 게다가, 196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군사문화에 푹 젖어 지냈으니, 군사의 프로토콜과 민간의 프로토콜이 상당 부분 겹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70년대에 고등학교를 다니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내가 유신 시절의 군가를 무의식적으로 읊조리는 것이 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군사문화란 그렇게, 의외로 부드럽게 다가왔던 것이다. 사실 부드럽게 다가온 것은 아닌데 당시 사회가 하도 우락부락하니까 일상 속에서 군사문화가 다가오는 페이스는 상대적으로 그렇게 대단히 억세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1980년대에는 사람들이 군사문화를 참 싫어했었다. 군대가 폭력성과 획일성의 원천이고, 사람들의 자율성을 빼앗는다고 욕들을 많이 했었다. 물론 군출신 정치인들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박희도, 박준병,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 이학봉, 권정달, 황영시 등등 5공화국의 실세로 대통령에서부터 각종 장관, 공사장을 해 먹은 분들이 군출신이고, 폭탄주 돌리는 습관부터위하여!”하며 위세 있게 단체건배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살벌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을 이 땅에 뿌린 이들이 군출신이기 때문에 그렇게들 생각했다. 그런데 군사문화가 정녕코 군대에서만 생긴 것인가? 군대는 군을 거쳐간 수 많은 남성들에게 제대하고 나서도 직장회식에서 큰 목소리로위하여!”하며 건배하라고 가르쳤는가? 군은 전역하는 병장에게 사회에 나가서도 엄격하고 절도 있는 군인정신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가르쳤는가? 당연히 아니다. 설사 그렇게 가르쳤다고 해도, 전역군인들은 자기가 고생한 부대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며 바로 모자 구겨 쓰고 상의는 바지 밖으로 빼 입고 담배는 삐딱하게 물고 고향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군대와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고, 그 다음 해 예비군 훈련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히 군기가 빠져 버려 현역 조교들을 괴롭히는 것이 예비역 병장들이다.

지금은 덜하지만 1980년대에 사람들이 군사문화를 싫어했던 이유는 군대가 파시즘의 원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시즘의 속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것은 군대 같은 커다란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자잘한 데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에 파시즘의 표상들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곳곳에 흩어져 있다. 위에 들은 5공 때 권력자들은 그런 흩어져 있는 표상들을 한데 모아다 정리해서 보기 좋게 해준 이들일 뿐이다. 나는 우리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파시즘의 표상들을 본다.

1. 60년대에 길거리에서 장발단속이라는 걸 했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경찰이 지나가는 행인의 머리를 강제로 자르는 것을 보는 일반 시민들은 하나같이 고소하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오늘날 같으면 인권유린이고 표현의 자유 침해라 하여 꿈도 못 꿀 일을 바라보는 당시의 일반시민들은 웃음으로 독재에 동조하고 있었다.

2. 80년대초, 5공화국이 들어선 지 얼마 안되서였다. 정부는 대학생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여 교통정리를 시켰다. 모자를 쓰고 호루라기를 찬 대학생들은 길에서 조금만 금을 넘는 행인에게도 살벌한 표정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호령을 해댔는데, 한쪽에서는 대학생들이 독재에 항거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대학생들이 교통정리의 명목으로 작은 독재를 실천하고 있었다

3. 텔레비전 드라마에 이순재가 나오면 꼭 권위적인 아버지로 나온다. 엄마로 나오는 윤여정은 당연히 복종형이고, 아들들(꼭 아들이 셋 이상 있다. 다수성이 중요한 것 같다)도 모두다 복종형이다. 이순재의 독재는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 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화가 날 때 마다 뚱그렇게 뜬 눈, 아랫사람들의 벌벌 떠는 태도 등을 통해 정황적으로 나타난다. 이순재가 하는 그 역할, 그 역할에 복종하도록 되어 있는 드라마의 플롯 속에 독재자는 아직도 살아 있다.

4. 술 마실 때 일제히 85데시벨로 “위하여!”를 외치며 건배하는 일사불란한 직장인들. 개별적으로, 작은 소리로 건배하면 안 됩니까?

5. 영화 <친구>에서 “니는 모꼬?”하며 학생을 출석부로 충동적이고 발작적으로 패는 선생.

6. 개발독재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준공기념탑(추풍령 휴게소 소재), 독재에 대한 항거의 상징인 광주 5.18 국립묘지에 있는 탑이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

파시즘은 상당히 모세혈관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이런 예들은 끝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가부장적 권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서도 나타나며, 어린 아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그것은 현실정치의 장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 학교, 친구들 간에도 나타난다.

 

군사문화의 아이러니는, 어떤 면에서는 이런 식의 파시즘적 경향이 군대보다 민간사회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는 면도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군대는 획일성을 강요하는 곳이며, 희생정신을 강요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군인이 획일성과 희생정신을 매일매일 식판에 밥을 타먹듯이 몸으로 체현하고 있는가? 군대는 군인에게 획일성을 강요하지만 군인들은 획일적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다만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할 뿐이다. 말년 병장의 예이긴 하지만, 군인들은 어떻게든 머리 더 길러보려고 노력하고, 남들 보다 더 군복을 멋지게 다려 입으려고 노력한다. 군대는 큰 획일성과, 세세한 차별성이 기묘한 불균형 속에 존재하는 이질집단이다. 거기에 비하면 민간사회가 더 자발적으로 획일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산을 좋아하던 내가 산악회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군대를 흉내 내는 획일적인 관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야영을 하며감사히 먹겠습니다!”라며 힘차게 소리 치며 밥을 먹는 것이나 (1980년도에 대학생병영집체훈련을 위해 문무대를 들어갔을 때 밥을 먹을 때 마다 이 말을 강제로 해야 한다는 사실에 우리들은 차라리 실소를 했다. 누구에게 감사하라는 것인지) “비 온다고 산에 안 가냐라는 말 (‘비 온다고 전쟁 안 하냐라는 말의 민간버전), 선배가 후배를 줄빠따를 때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맞는 전통 등, 산악회는 군대의 온갖 억압적 악습을 자발적으로 따르는 기묘한 집단이었다. (지금은 안 그렇기를 바란다) 이런 역겨움은 대학생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또 나를 엄습했다. 새벽에 밖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나길래 내다보니 대학생들이 피티체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체조도 아니고 유격훈련 때 병사들 몸을 풀기 위해 하는, 단순히 체력단련이 아닌 (PT=Physical Training) 다분히 기합의 성격이 강한 피티체조를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비이-! 하는 악몽 같은 유격조교의 피티체조 특유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말이다. 그 대학생들은 피티체조에 깃들어 있는 억압성과 획일성을 읽어낼 해독능력(literacy)이 없는가?

우리의 삶 속에 깃들어 있는 획일성은 우리 문화의 뿌리이며 본질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획일성은 기묘한 데자뷰를 이루고 있다. 같은 곳을 계속 맴 돌고, 결국 같은 시간으로 돌아오는 그 데자뷰 말이다. 만일 여러분이 고속도로를 한참 달렸는데 똑같은 곳이 다시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겠는가? 이런 체험을 오늘날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언제나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매일 그런 이상한 여행을 하면서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서울을 떠나 조금 가다 보면 휴게소가 나오는데, 대구를 거의 다 가서 휴게소에 들어가도 같은 휴게소가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경부고속도로건 영동고속도로건 중부고속도로건 다 마찬가지이다. 건물의 배치, 구조도 같고, 거기서 나는 소리도 같다. 휴게소 주차장의 맨 앞줄 가운데 쯤에서는 의례히 잡상인이 트럭에 카세트를 싣고 팔고 있는데, 어느 휴게소에 가던지 그 잡상인이 있는 위치도 같고, 트럭의 크기, 모양, 차림새, 틀어주는 노래의 곡목, 후진 음질, 후진 분위기도 똑같다. 전체적인 건물의 배치, 새로이 개발되어 나타나는 식당의 메뉴, 남자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소변보는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계도하고 있는 위인들의 문구, 걸려 있는 그림, 화장실을 멋있게 꾸미려는 과도한 정성, 카페테리아와 국수집 사이의 공간에서 파는 옛날 대가들의 복제 그림 등, 모든 것들이 똑같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무섭고도 집요한 데자뷰이다. 고속도로 상에서는 아무리 달려도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그 시간과 공간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질성의 체험으로서의 여행이라는 취지는 사라진다.

데자뷰는 고속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면 길가에서 딸기를 파는 곳이 많은데, 딸기들은 의례히 갈색의 바구니에 담겨 있다. 그런데 그 바구니의 색깔과 형태는 기본이고, 바구니를 쌓아놓은 모양과 배치도 어디를 가나 똑같다. 그러다 딸기를 안 사고 식당엘 가면 간판에 의례히 함흥냉면이라는 글씨가 나오는데, 그 글씨들은 정사각형으로 배치된 네 개의 정사각형의 틀 속에 들어 있다. 각각의 틀의 색깔은 빨강, 파랑, 노랑, 초록으로 똑같고, 그 중 하나는 약간 삐딱하게 배치되어 있는 것도 똑같다.  그들은 군대에서보다 훨씬 더 자발적으로 획일적인 간판을 달고 있다. 여기서 자발적이라는 것이 모든 것의 핵심이다. 사실 획일성이 문제가 되는 큰 이유는 사람들이 억압적 질서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는데 있다. 억압적 질서는 결코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는다. 항상 자발성과 함께 다니지만 자발성은 억압성의 뒤에 숨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1980년대의 국기하강식 때 억압을 받아들이는 자발성이 그랬다. 5공화국 시절, 저녁 마다 국기하강식이라는 걸 했는데 그 잘난 서울대학교에서 마저 국기하강식을 하면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애국가를 들었다. 그때 혼자 걸어가면 뒤에서 뭐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식으로 자발성은 뒤에 숨어서 억압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저녁 마다 온 국민이 잠시 멈춰 서서 국기가 내려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국기에 대한 경배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의가 무엇이 됐든 사람들을 같은 시간에 같은 자세로 서 있는 기표로 바꾼다는 거기에 억압성이 있고 사악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억압적 질서는 사람들 속에 상당히 내면화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어느 언론사는 몇 년 전 김모 일병의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에 군홍보 드라마였던배달의 기수를 기억하는 카페들이 생겼음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은 황당무계한 얘기를 보도했다. 국방홍보원 관계자도배달의 기수를 보고 자란 세대는 요즘 군인처럼 나약하지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지도 않았다비록 군 홍보영화였지만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남자들만의 세계를 그려 군기교육과 병영 내무반 생활에 도움을 줬다. [.....] 박정희 대통령 시절 공중파 TV를 타게 된배달의 기수는 군대는 어떤 곳이며, 군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고, 또 장래희망으로 군인이 1순위로 꼽히는 등 군의 사기를 드높였다당시 경찰에수사반장이 있었다면 군대에는배달의 기수가 존재하며 젊은 장병들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고취시켰다고 전했다.

내 기억에 대한민국 역사의 어느 순간에 장래희망 1순위에 군인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며, 수사반장을 보고 자란 내게 배달의 기수는 정권홍보용 드라마였을 뿐 내용이나 구성의 재미나 출연진 등 서로 필적할 만한 위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배달의 기수에 최불암급의 연기자가 나와서 수사반장 같이 재미 있는 구성으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이 보도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심이 가는데, “현역 복무를 마치고 P기업에 재직 중인 최모(38) 과장이 “군대는 아무나 가는 게 아닌 만큼 보다 끈끈한 전우애를 심어줄배달의 기수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는 부분에서는 완전 소설이라는 느낌이 든다. 만일 이런 게 군사문화라면 이것은 군대의 실상이 어떻고 하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형편 없는 픽션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매우 후진 현실의 문제이다. 지금이 1980년대였다면 지식인들은 거짓된 선전홍보물의 파사드 뒤에 숨어 있는 진실된 모습을 찾는 것이 왜곡된 군사문화를 바로 잡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2000년 하고도 데케이드 하나가 거의 넘어가는 무렵이다. 진실이고 거짓이고가 확정되어 있고, 거짓의 뒤에 숨어서 고정되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진실이고 거짓이고 다 한 배에 탄 승객들처럼 같이 흔들리는 유동과 진동의 세상이다. 문제는 거짓의 생산만큼 중요한 진실의 생산의 장치와 힘을 따지는 것이다. 군사문화의 억압적이고 획일적인 양상은 그것을 치워 없앰으로써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우리와 공모하고 있는 그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념적인 전환이다. 마치 같은 못대가리를 계속 치듯이 군사문화를 같은 자리에 놓고 계속 비판하는 대신, 살짝 개념의 자리를 옮겨야 한다. 말하자면 변형(transfiguration)을 시켜 보자는 것이다. 즉 형태(figure)를 바꾸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군을 홍보할 때 많이 쓰는 불철주야, 물 샐 틈 없는, 철통 같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혼연일체 같은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유치하고 황당무계한 말들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런 말들이 마치 진실인 양 통용시키는 것이 군사문화라면, 그것들의 허구성을 해체하는 것이 문화의 군사이다. 즉 나도 모르게 그런 가사들이 들어 있는 군가를 읊조리는 나 자신을 해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 부담을 몽땅 혼자서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게 생겼으니, 그것은 한 전시 덕분이다.

39(2)에 이르러서 군사문화는 일대 반전을 겪게 된다. 다섯 명의 남성 사진가들이 본 군사문화는 더 이상 딱딱하지도, 획일성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불철주야, 물 샐 틈 없는, 철통 같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혼연일체 등의 신화적 뻥이 들어 있지 않다. 다섯 사진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군사문화가 우리의 가슴 속에 틀고 앉은 그 자리를 해체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뛰어든 서울법대생 강의석군 같이 신체적 위험을 무릎 쓰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다섯 사진가들은 각자 자신의 관심에 따라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봄날의 어느 예비군 훈련장에서 성교육에 대한 강의는 안 듣고 목련만 쳐다보거나 범의 꼬리나 매만지고 있는 허망한 예비군 (이용훈), 에어쇼 관람객의 머리를 보호하기는 커녕 그것을 파고 들어 파괴하기 직전의 F16, A10 등의 전투기 (노순택), 한 때는 남자 아이들의 매끈하고 예쁜 로망이었으나 이제는 기괴한 오브제처럼 확대되어 징그럽게 다가오는 플라모델 부품들 (김규식), 무섭고 살벌한 공산주의가 팽팽한 뼈대를 이루며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찬바람이 횅 하니 부는 썰렁하고 나약하여 곧 무너질 듯한 북한 (백승우), 지배와 점령의 역사가 더 이상 정복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구슬픈 추억마저 불러일으키는 근대 건축물 (전재홍) , 군사문화는 연민의 정 조차 느끼게 할 정도로 허술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거 ‘군관민’이라는 위압적인 문구로 민간인을 깔아뭉개던 그 모습이 아니다. 이것이 군사문화의 숨은 실상이라고까지는 말 못해도, 우리가 그간 보아오지 못했던, 아니면 보고도 눈 감았던 군사문화의 모습인 것이다.

왜 그럴까? 군사문화는 그간 너무나 크거나 빠르거나 시커멓거나 높기만 했었다. 하여간 그것은 모든 면에서 초(; super)였다. 초고속으로 초고공에서 초규모로 초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민간인도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고질라를 죽인 것도 군대의 힘이었고 (1954년 오리지널 판) 킹콩을 죽인 것도 군사무기였다. 그 초를 뛰어넘든가 밑으로 기어서 지나가던가 슬쩍 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은 아주 빠른 셔터속도로 사진을 찍어서 전투기가 인간의 머리에 꽂히기 직전의 극적인 순간을 잡을 수 있는 사진가가 출현하기를 기다렸었고, 플라모델로 축소된 모형 속에서 실제 전투기의 괴물스러운 면을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진 사진가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며, 항상 시커멓고 얼룩덜룩한 색깔로만 위장하던 군인이 어떻게 밝은 색의 꽃과 어울릴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계조의 감각이 좋은 사진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북한과 남한 사이에 있는 높은 장벽 너머로 카메라를 들이밀어 북한의 숨은 모습을 살짝 보고 올 수 있을 정도로 키가 큰 사진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런 사진가들이 온 것이다. 사실 그런 사진가들은 그간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다. 그러면 왜 그들은 이제야 왔을까? 사실 그들이 온 것은 한 몇 년 되었다. 즉 선배나 선생들이 찍는 것 따라 찍지 않고 자신의 눈을 믿으며 계란껍질 같은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진가들, 실경산수에서나 볼 수 있는 조화로운 가상 같은 풍경은 내던져 버리고 전기철탑이 우거진 철제 풍경에 시선을 맡긴 사진가들,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키치문화의 색깔과 감각을 피하지 않고 렌즈를 더럽혀온 사진가들은 준비하고 있었다. 단지, 그들이 한데 뭉쳐서 이루어내는 시너지를 아무도 못 본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력으로 왔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군사문화를 해체해서 우리들의 삶의 문화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패러다임과 함께 왔다. 그리고 달라진 사진의 패러다임과 더불어 왔다. 사진은 기록도 아니고 증언도 아니며, 그들에게는 언표의 한 국면이다. 나는 여기서 사진이 도구라거나 매개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사고는 사진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것이 전달하는 내용―즉 이념이나 사고, 느낌, 태도 같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마치 중요하다고 내세우는듯한 그런 것들―만이 중요하며, 매체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하는 아주 후지고 쓸쓸한 근대의 형이상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표현은 존재와 별개가 아니므로, 사진은 이들 사진가들과 별개가 아니다.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이 세계를 만나고 구축한다.

이제 구축의 원칙이 바뀌었다. 사진은 보여주거나 가리거나 강조하거나 은유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진가의 삶의 세계의 일부이며, 그 시선은 눈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의 일부이다. 그러니까 사진의 장치는 사진가들과 하나이며, 장치가 변하면 존재도 변한다. 인간과 사진 둘 다 기계이며 서로 붙어 있어서 한 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변하고, 한 쪽이 망 하면 다른 쪽도 망한다. 그러므로 사진가들이 군사문화를 찍는다는 것은 마치 누드모델이 벌거벗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기다리듯이 사진의 대상으로 떡하니 놓여 있는 군사적인 어떤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존재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는 군사문화를 다른 곳에 취직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행위를 해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단지, 해체라는 것이 당장 나쁘니 없애버리자는 성급한 주장이 아니라, 대상의 메트릭스를 약한 불에 뭉근히 끓여서 좀 흐물하게 만든 다음 다른 것과 섞고 원래 있는 자리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 놓아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게 바꿔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화두는 ‘없애자’가 아니라 ‘다르게’이다. 쉬워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겁고 어렵다. 사실 39(2)전시에서 사진가들이 하고 있는 것이 군사문화를 ‘다르게’ 보자는 것인데, 그들이 1990년대에 이런 사진을 들고 나왔으면 관객들은 그들 사진의 ‘다름’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괘씸하다거나 황당무계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좋아진 건 지, 아니면 시대는 여전히 척박하나 ‘다르게’ 봐야 한다는 요구가 커진 것인지, 하여간 다섯 사진가들 덕에 군사문화가 많이 흐물해졌다.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의 사진을 보면서 딱딱하고 물샐 틈 없으며 철통같이 막혀 있다고 생각되던 군사문화에 민간인들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줍잖은 평론가들이 사진전시 서문에 꼭 쓰는, 사진이 가상이냐 실제냐 하는 병신 같은 논쟁은 여기서는 좀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들의 사진이 가상이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선가 힘을 쓰는 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을 안다. 배우가 흘리는 피도 가짜고 사랑도 가짜고 때리는 것도 가짜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무리 냉철한 평론가라 할지라도 배우의 손등을 칼로 찍는 장면에서는 좀 움찔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면 그것은 가상은 가상이되 작용하는 가상이기 때문이다. 즉 허공에 둥둥 떠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가상이 아니라 실제의 삶과 제도와 연관을 맺고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수행성(performativity)을 가진 가상인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군사문화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 대한 언어가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작용하는 수행성의 언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제 군사문화는 문화의 군사로 개념적 전환을 했다. 아니, 꼭 했다고는 못 해도 그렇게 할 수 있는 문은 살짝 열렸다. 오랜 만에 사진이 좋은 일을 했다.